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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신앙

동성애는 사마리아 여인인가? 간음한 여인인가?

by 날기새 2022. 1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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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진영 논리를 극히 혐오합니다. 잘한 것은 잘한 것이고 잘못된 것은 잘못된 것이지, 나와 같은 편에 있다고 하여 잘못된 것이 잘한 것이 되고, 그 반대라고 하여 잘한 것이 잘못된 것으로 변하는 것이 정상은 아니지 않습니까. 같은 이유로, 혈연 / 지연 / 학연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음성적인 관행들도 모두 좋아하지 않습니다. 같은 지역, 같은 학교 출신이라는 이유로 저를 같은 진영으로 삼으려는 모든 시도에 대하여 저는 선을 그어왔습니다. 

 

뜬금없이 진영 논리를 먼저 얘기한 것은 '뉴스앤조이' 때문입니다. 저는 뉴스엔조이의 개혁적 진보적 신앙관과 그로 말미암은 활동을 지지합니다. 매월 50,000 원을 후원하는 유료 회원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뉴스엔조이의 수많은 기사와 캠페인 중에서 유독 마음에 들지 않는 주제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동성애'입니다.

 

성경을 퀴어의 눈으로 재해석 한다는 '퀴어성서주석'을 자주 소개하고 그들의 강좌를 홍보하는 것이 저는 불편합니다.

 

 

퀴어 눈으로 본 마가복음…"예수의 죽음, '정상성' 강요하는 사회에서 죽임당하는 퀴어와 닮아"

퀴신아 QBC '마가복음' 강좌…"예수는 몸의 정상성 벗어나 '불결' 낙인찍힌 이들 치유·해방"

www.newsnjoy.or.kr

 

 

성별 이분법 아닌 '트랜스젠더' 관점으로 읽는 성서

한국퀴어신학아카데미 <트랜스젠더와 기독교 신앙> 강좌…11월 8일부터 4주간 매주 화요일

www.newsnjoy.or.kr

 

동성애 주제와 그 외의 주제에 대하여 저는 확고히 분리하여 각각의 활동을 분석 평가하며, 어느 한쪽의 공이나 과가 다른 쪽의 과와 공에 영향을 주지 못하게끔 제 머릿속의 인식 체계 속에서 관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무지개 퍼포먼스 참여 신학생 징계 관련 업데이트 기사를 보면서 본질적인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어느덧 3년, '무지개 행동'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이다호데이 특별 기고] 장신대 무지개 퍼포먼스 당사자의 징계 후 3년 이야기

www.newsnjoy.or.kr

 

 

법원, 장신대 '무지개 행동' 학생들 양심의자유·학습권 침해 인정

원심 뒤집고 "징계 및 후속 과정과 소책자 배포는 '불법행위'…학생들에게 손해배상하라"

www.newsnjoy.or.kr

 

사회적 소수자, 약자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폭압적 비난만이 쏟아지는 것에 문제의식을 갖게 된 젊은 신학생들이, 고루한 매너리즘에 대항하는 작은 퍼포먼스를 한 것에 대해, 장신대가 그들의 인생을 파괴적으로 뒤흔드는 지나친 조치를 취했다는 것, 잘 알겠습니다. 그 과정에서 장신대와 소속 교수, 목사들이 치사하고 졸렬한 모습을 보인 것도 알겠습니다. 심지어 그 조치가 순수한 기독교 신앙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권력의 역학 속에서 다분히 정치적으로 이뤄진 점도 잘 알겠습니다. 바람직하지 않고 정의롭지도 못했다는 것, 너무나 잘 알겠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을 인정한다고 했을 때, 동성애에 대한 당사자들의 입장은 어떤 것인지, 저는 그게 궁금합니다.

 

예수님은 비슷하면서도 대조적인 두 여인을 만나신 적이 있는데, 그 중 한 사람이 '사마리아 여인'이고(요한복음 4장), 다른 한 사람이 '간음한 여인'입니다(요한복음 8장).

 

그리스도와 간음한 여자, Nicolas Poussin(1594-1665)

 

두 여인은 공통점이 많습니다. 두 여인 모두 유대인들로부터 경멸을 받던 존재였고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았습니다. 심지어 간음한 여인은 돌로 쳐 죽임을 당할 위기에 있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두 여인 모두 편견 없이 받아들이셨고 그들의 죄를 용서하셨으며, 자유와 구원을 선포하셨습니다. 

 

하지만 성경에서 두 여인 사이에 큰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사마리아 사람'에 대한 유대인들의 사회 문화적 편견 때문에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었고, 예수님은 그러한 관습적 터부를 깨고 그들을 편견없이 사랑으로 품어주셨습니다. 반면, 간음한 여인은 명백히 죄를 지은 사람이었습니다. 다만,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숨은 죄에 대하여는 침묵하면서 드러난 타인의 죄를 과도하게 비난하고 심지어 죽이려고까지 하는 그 악한 마음을 지적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단 한 번도 간음이라는 죄를 두둔하신 적이 없습니다. 더 나아가 간음한 여인에게는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요 8:11)"고 분명히 지적하여 말씀하셨습니다.

 

구분 간음한 여인 사마리아 여인
공통점 유대인들로부터 경멸을 받음
차이점
(경멸의 이유)
죄(간음)를 지음 사마리아 사람이라는
사회/문화적 편견
유대인들이 잘못 한 것 과도한 정죄와 처벌 부당한 편견

 

다시 원래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동성애에 대한 교계(목회자, 교인)의 과도한 정죄와 혐오를 인정합니다. 그리고 동성애 외의 분야에서 저지르고 있는 자신들의 수많은, 드러나지 않은, 더러운 죄에 대하여는 침묵하면서 동성애에 대하여 유독 가혹하리만치 경멸의 돌팔매질을 하는 것도 인정합니다. 그런데 그런 잘못과 별개로, 동성애자라는 사회적 약자를 옹호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귀하들은 동성애자가 성경의 '간음한 여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사마리아 여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그게 궁금한 것입니다.

 

만약 전자라면, 교회는 동성애자를 향한 경멸과 혐오를 걷어내고 불신자에게 사랑으로 전도의 손길을 내밀듯, 동성애자를 교회 안으로 받아들이고 그들과 예배하며 그들과 교제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인, 폭행, 상해, 강간, 사기, 절도, 시기, 교만, 탐욕, 음란, 배금주의, 권력 숭배 등 우리 안의 수많은 죄를 날마다 회개하고 애통해하듯이 동성애에 대하여도 함께 회개하고 애통해하도록 할 것입니다. 동성애는 쉽게 고쳐지는 것이 아니라고요? 다른 죄도 똑같습니다. 짐짓 신앙적인 척하는 저도 경찰에 수사를 받거나 감옥에 갇히지 않을 뿐 매 순간 내면 속에 수많은 죄악이 잠재해 있으며 날마다 죄를 짓고, 그런 자신을 날마다 혐오하며, 또다시 저지르지 않기를 바라며 회개하지만, 또다시 죄를 저지릅니다. 동성애도 그 수많은 죄 중에 하나일 뿐입니다. 과도한 정죄와 처벌만을 걷어낸다면, 동성애자나 저나 똑같은 죄인이고 날마다 똑같이 죄를 짓고 사는 평범한 그리스도인인 것입니다.

 

그런데 후자라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동성애는 죄가 아닙니다. 회개를 할 필요도 없습니다. 유대인들이 사마리아 여인을 부당하게 대우한 것처럼, 동성애는 죄도 아니고 회개할 필요도 없는 것임에도 교회가 그들을 부당하게 비난하는 것이 되어버립니다. 동성애라는 사회적 소수자를 대변하고 옹호하는 분들은 그 사회적 약자들을 사마리아의 여인과 같이 생각하는 것인지요?

 

 

 

제가 과문한 탓인지 동성애, 퀴어 관련 수많은 문서를 읽어보아도 '동성애가 잘못은 맞는데, 현재 그들을 대하는 교회의 시선과 대우는 잘못되었다' 라기 보다는 '동성애는 아무 잘못 없는데 부당히 핍박을 받고 있다' 라고 밖엔 읽히지가 않습니다. 그분들은 동성애자를 '간음한 여인'이라고 생각하는 건지, '사마리아 여인'이라고 생각하는 건지 정말 듣고 싶고 궁금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은 정말 놀라운 축복입니다. 그 사랑은 일곱 번을 일흔 번씩이라도 용서하실 정도로 오래 참으시는 사랑입니다. 원수를 살리기 위해 목숨을 내어놓는 놀라운 사랑입니다. 하지만 죄를 죄라고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모든 행동을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합리화할 때 그 사랑은 그저 손수건이나 앞치마 같은 부적(행19:12)일 뿐입니다. 부적처럼 사용되는 그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와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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