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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족 관계
- 증조부(성명 불상) - 사무엘 모펫 선교사를 통해 기독교로 개종
- 조부 : 주인섭
- 부친 : 주기남(5남 중 넷째)
- 모친 : 변정숙
- 남편 : 최기호(1949년 소천), 김명식(2005년 소천)
- 김명식 장로와 재혼 후 슬하 1남 1녀
■ 주선애 장신대 명예교수 생애
- 1924년 2월 평양 출생
- 1926년(3세) 7월 - 부친 주기남, 폐결핵으로 소천
- 부친은 폐결핵으로 요양하기 전 평안남도 대동군 추빈리교회에서 주일학교 교사로 봉사
- 부친의 유언 : "이 세상은 잠깐이라오. 내가 죽더라도 선애를 잘 키워 주오. 선애는 딸이지만 꼭 기독교 선생이 되도록 길러 주오.”
- 당시 모친(변정숙)은 21세였고, 이후 고무신 공장을 다니며 주선애 교수를 양육함.
- 1941년(18세) - 평양 정의여고 졸업
- 최기호 목사(당시 평양신학교 전도사 신분)와 결혼
- 최기호 목사, 평양 동광교회로 임직
- 주선애, 황해도 장연군에서 산파 자격증 따고 무료 의료 봉사
- 1946년(23세) - 평양신학교 여자신학부 입학
- 1948년(25세) - 월남 후 마포 동막교회에 거처 마련
- 경북 영덕 영해교회에서 최기호 목사 청빙
- 1949년(26세) 가을 - 최기호 목사 새벽기도 후 쓰러져 소천
- 평양 동광교회 임직 당시 무허가 집회를 이유로 옥고를 치른 후유증
- 1950년(27세) 5월 - 장로회신학교 졸업(3회)
- 부산 부전교회 사역
- 대구 신망원 고아원 원장
- 대구 고등성경학교(현 영남신학대) 여자기숙사 사감
- 1953년(30세) - 대구 영남대학교 졸업(영문과)
- 1956년(33세) - 미국 뉴욕성서대학교 유학(기독교교육학, 장학생)
- 1958년(35세) 8월 - 귀국 후 숭실대 기독교교육학 개설(국내 최초) 및 초대 학과장 취임
- 1959년(36세) - 여름성경학교 교사강습회 주최(국내 최초)
- 1963년(40세) - 장로회신학대 여전도사 교육과정 개설(국내 최초)
- 1966년(43세) - 김명식 장로(53세, 영락교회)와 재혼(슬하 1남 1녀)
- 1976년(53세) - 장신대 이상양 전도사 등과 함께 마포구 망원동 뚝방촌 빈민사역
- 1976년(53세) - 하용조 전도사(전 온누리교회 담임목사)의 연예인 전도 사역 지원
- 1979년(56세) - 장로회신학대 대학원장
- 1976년(56세) - '장로교여성사' 저술
- 1983년(60세) - 운전면허 취득
- 1986년(63세) 4월 - 여교역자 안식관 준공
- 사역 계기 : "북한에서 넘어온 내 또래 여전도사가 있었는데 병이 나서 교회 일을 못 하게 됐다. 갈 곳을 찾다가 기도원으로 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얼마 후 몸이 심하게 부어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는데 병문안 갈 시간을 내지 못하고 며칠을 미루던 사이 그가 하나님 나라로 떠났다. 부모도 자식도 없을 텐데 혼자 앓다가 생을 마친 그 전도사를 생각하면서 너무 마음이 아팠다. 평생 고생하면서 가난과 외로움 속에서 살아온 여전도사들에게 나는 빚을 지고 사는 것 같았다. 여교역자 ‘노후대책을 위한 방안’을 모색하기로 결의했다."
- 한경직 목사의 준공예배 축사 : "한국교회를 부흥, 성장시키기 위해 이렇게 많이 수고한 사람들이 여교역자들인데 그동안 한국교회는 대접하지 못한 게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축복하셔서 여교역자들과 여러 성도가 물심양면으로 협조해줘서 안식관 준공예배를 드리게 된 것을 감사드립니다."
- 1989년(66세) - 장신대 정년 퇴임
- 2002년(79세) - 망명한 북한 황장엽 노동당 비서를 만나게 되어 전도하면서 친구가 됨
- 2004년(81세) - 탈북자를 위한 '자유북한방송국' 개국 지원
- 2005년(82세) - 탈북자종합회관 개관
- 2005년(82세) - 남편 김명식 장로 소천(향년 92세)
- 2007년(85세) - 주선애 교수의 장신대 제자였던 김동호 목사가 탈북자의 사회 적응을 돕는 사회적 기업 '열매나눔재단'에 200억 원 출연
- 2010년(87세) 7월 - 영락교회 내에 탈북자 문제를 전반적으로 다루는 남북평화신학연구소를 설립
- 2021년(98세) 11월 - 해외독신여선교사 은퇴 안식관 건립
- "여성선교사들은 복음전파를 위해 결혼 생각도 하지 않고 미지의 나라로 주님 의지해 많은 사람들을 선교했는데 평생 일하고 노쇠해져 고국에 오면 부모님은 돌아가셨고 집값은 비싸져 거주할 곳이 없어 마음이 아파서 꼭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 "이곳에서 평생을 헌신한 선교사님들이 편히 쉬시기도 하고, 더 나아가 생명력 있는 선교사들의 훈련지, 복음 통일과 세계 선교를 위한 장소가 되기를 바란다."
- 2022년(99세) 6월 19일 소천(만 98세)
주선애 명예교수는 사재를 털어 경기도 포천의 은성수도원을 인수, 장신대에 경건훈련원으로 기증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지금 살고 있는 집과 재산을 모두 학교(장신대)에 기증했습니다.
고아와 탈북민의 대모라 불리우는 주선애 교수. 그는 100년의 삶의 천 년처럼 살다 갔습니다. "이 세상은 잠깐이라오. 내가 죽더라도 선애를 잘 키워 주오. 선애는 딸이지만 꼭 기독교 선생이 되도록 길러 주오.” 라는 유언을 통해 주선애 교수의 한 평생에 큰 영향을 준 아버지를 이제 천국에서 만나 기쁨과 참된 평안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故 주선애 교수 장례식에서 그의 제자인 김동호 목사가 읽은 축사(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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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저 동호입니다.
선생님 장례식에 조사를 부탁받았습니다.
아무리 책상에 앉아 애를 써 봐도 조사가 써지지 않았습니다.
참으로 엉뚱하고 말도 안 되는 소리 같은데 제가 선생님의 장례식장에서 하고 싶은 건 조사가 아니라 축사라는 생각이 자꾸 들었습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선생님이 우리 곁을 떠나셨는데 참 불경스럽게도 전 슬프지가 않습니다, 오히려 기쁩니다. 말도 못하게 기쁩니다. 선생님은 아직도 저를 ‘동호’ ‘동호’ 부르시지만, 그게 말도 못하게 정겹게 느껴지지만, 선생님 저도 70이 넘었답니다. 그런데 사랑하고 존경하는 어른의 죽음 앞에서 슬픔이 아닌 기쁨을 느껴 본 것은 아마 70 평생 이번이 처음이 아닌가 싶습니다. 극한의 슬픔을 초극한의 기쁨과 감사가 밀어낸 것 같습니다.
저는 선생님의 죽음이 기쁩니다.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그리고 얼마나 자랑스럽고 부러운지 모릅니다. 선생님처럼 죽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선생님 저도 늘 죽음을 꿈꾸며 삽니다. 제가 꿈꾸고 욕심내는 죽음은 beatiful landing입니다. 그런데 선생님의 죽음은 그것을 뛰어넘은 fantastic landing입니다.
동호가 하는 선교회 사무실에 가보고 싶다고 하셨지요?
그래서 지난 금요일 저희 사무실에 오시기로 약속하셨지요?
그러다가 넘어지셔서 갑자기 병원에 입원하시는 바람에 오시질 못해 우리들이 그날 오후 선생님 병문안을 갔었지요?
많이 걱정하며 갔었는데 선생님 너무 멀쩡하셔서 얼마나 감사했는데요.
잡아주시는 손에 힘이 느껴져 제가 속으로 ‘우리 할머니 돌아가시려면 아직도 멀었네’ 했었답니다. 그런데 이틀도 지나지 않아 선생님이 하나님 나라로 가셨다는 부음을 들었습니다. 그 부음을 들었을 때 들었던 생각은 ‘아- 하나님이 우리 사랑하는 선생님을 에녹처럼 데려가셨구나’였습니다. 그래서 기뻤습니다. 그래서 감사했습니다. 그래서 슬픔이 자리도 못 잡고 밀려났던 겁니다.
힘들어하지도 않으시고
괴로워하지도 않으시고
아파하지도 않으시고
그렇게 편하게 주무시듯 하나님께로 가셔서 선생님을 보내는 저희들에게는 그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말로 다할 수 없습니다.
선생님의 죽음은 하나님의 훈장입니다. 훈장 중에도 최고의 훈장이십니다.
98년 평생을 한결같은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랑하는 하나님께 충성을 다하신 선생님에 대한 하나님의 칭찬이고 축복이요 상급이십니다.
누구보다도 하나님의 마음을 잘 읽으셨던 선생님
하나님이 아파하시면 함께 아파하시고
하나님이 안타까워하시면 함께 안타까워하시고
하나님이 슬퍼하시면 함께 슬퍼하셨지요.
그 아파하시고, 안타까워하시고, 슬퍼하시는 모습이 진정이고 간절하셔서 지켜보는 우리 제자들도 함께 아파하고 안타까워하고 슬퍼하게 하셨지요.
그래서 하나님의 기쁨도 늘 함께 하셨고 저희도 덩달아 그 기쁨을 맛볼 수 있었지요.
때문에 선생님은 90이 넘으셔서도 끊임없이 꿈꾸시고 일을 저지르시고 밀어붙이시고 결국 이루어내셨지요. 죽는 날까지 하나님이 신뢰하셔서 하나님의 일을 맡기시는 삶은 얼마나 행복한 삶일까요? 선생님은 하나님의 신뢰만 받으신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신뢰도 받으셨지요? 특히 우리 제자들의 깊은 신뢰와 존경을 받으셨지요?
선생님 행복하셨지요?
원 없이 사셨지요?
다윗처럼 선생님의 잔도 차고 넘치셨지요?
부족함이 없으셨지요?
삶도 그리 복되시더니 어쩜 죽음도 그렇게 복되십니까?
아름답습니다.
삶도 아름답고 죽음도 아름답습니다.
선생님의 삶도 부럽고 선생님의 죽음도 부럽습니다.
그런 근사한, 황홀한 죽음으로 우리를 떠나시니 슬퍼야 할 자리에 기쁨이 넘칩니다.
그러니 어떻게 제가 선생님의 죽음 앞에서 조사를 할 수 있겠습니다.
선생님 축하합니다.
선생님의 그 복되고 아름답고 황홀한 죽음을 축하합니다.
열렬한 박수로 사랑하는 선생님을 하나님 나라로 보내드립니다.
선생님이 우리의 선생님이셔서 참 많이 행복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 2022년 6월 22일 장로회신학대, 한경직 기념예배당에서 김동호 쓰고 읽음
축사 영상은 여기를 참고
참고 문헌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12424076
http://m.kmib.co.kr/view.asp?arcid=0924082598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088505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04108538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4088802
http://www.pckworld.com/article.php?aid=8319569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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