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링크에서 퍼온 글입니다.
먼저 뉴스를 하나 링크합니다.
링크된 뉴스 내용 중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1990년대 중반쯤부터 한국 개신교는 중대한 변화를 맞았다. 새 신자의 유입이 거의 사라졌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양적 팽창에 성공한 교회들이 있었다..... 그 성공한 교회들의 모델이 무수한 교회들 사이에서 회자되며 모방되었다..... 인적, 물적 자원이 풍족해야 성공할 수 있는 모델이었다.
예배는 하나의 공연이 되었다. 전문화된 예배기획자, 연주팀, 찬양팀, 성가대, 음향·조명·영상 미디어팀 등 전문가 조직의 일사불란한 조합을 통해 공연으로서의 예배가 구현되었다. 그리고 이미 문화적으로 고품격 취향의 주체가 된 중상위 계층 신자는..... 공연의 세련된 수용자가 되었다."
나는 전체적인 내용에 대해 논평할 깜냥이 안되고, 저 대목과 관련해 내가 매우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 한 가지만 이야기 해보려고 합니다.
저희 교회는 대예배 성가대원들 중에 Pay(수고비?)를 지급받는 성가대원이 섞여 있습니다.
대예배 성가대에 왜 Pay를 받는 성가대원이 있어야 하나요?? 성가대는 남들보다 조금 혹은 많이 가지고 있는 아름다운 목소리의 은사를 가진 사람들이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 봉사하는 부서가 아닌가요? 언제부터 성가대가 부분적인 유료 합창단이 되었나요?
성가대 모든 구성원이 Pay를 받는 게 아니라 그 중 일부(주로 전공자)만이 Pay를 받는다는 사실이 더 기괴합니다. 전공자의 목소리는 금전적인 가치를 받을 만한 은사이고, 나머지 성가대원은 금전적인 가치가 없는 무료 혹은 염가의 은사인가요?
정말 성가대가 그런 Pay 성가대원이 있어야만 제대로 돌아갈 수 있는 걸까요? '제대로 돌아간다'는 것의 의미가 하나님께 제대로 된 성가가 올려질 수 있다는 의미인가요? 아니면 공연 관람자가 보기에 적절한 수준의 퀄리티가 나온다는 의미인가요?
일정 퀄리티를 유지할 수 있는 멤버가 부족해서 인원을 채우기 위해 Pay를 주고 모셔오는 것인가요? 멤버가 부족하면 성가대 규모를 줄일 일이지, 인원 채우자고 찬양할 사람을 돈을 주고 데려 오는 건 본질이 뒤바뀐 것 같습니다.
찬양은 예배의 한 부분이고 예배도 결국 성도의 모임입니다. 방송 시스템과 같이 전문적인 기술을 필요로 하는 분야가 아니지 않습니까? 잘 부르든 못 부르든 성가 이전에 찬양입니다. 유료 공연이 아니잖아요. 하나님께서 공연 퀄리티 떨어진다고 예배를 열납 안받지는 않으실 것 같은데.....
나는 도무지 Pay 성가대원이 있어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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