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시대에 어떤 목사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었던 그 목사는 신사참배를 거부하다 갖은 박해를 당하게 되었고, 그의 가족은 가난에 허덕여야 했습니다. 밥은 먹는 날보다 굶는 날이 더 많았습니다. 급기야 형무소에 잡혀간 목사는 고문 당하다 순교하고 그의 아내는 병으로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목사의 아들은 고아가 되었습니다.
6.25사변이 터지자 아들은 부산으로 피신했지만 초등학교만 일곱 번 퇴학 당한 그로선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기 힘들었습니다. 밤에는 고아원에서 잠을 자고, 낮에는 나무 들통 만드는 공장에서 일하면서 입에 겨우 풀칠만 하다가 결국 그는 폐병에 걸렸습니다. 치료는 커녕 그 그 누구로부터 제대로 보살핌을 받지 못하던 그는 길바닥에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죽었어도 이상할 것 없는 삶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섭리는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죽어가던 그를 지나가던 사람이 불쌍히 여겨 부산시립병원 응급실에 실어다 주었던 것입니다. 피골이 상접하고 얼굴이 새까만, 연고도 없는 폐병 환자를 한 간호사가 불쌍히 여겼습니다. 그리고 그를 극진히 간호하여 마침내 생명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이 그 간호사의 마음을 움직였고 그 측은함이 긍휼과 사랑의 감정으로 바뀌었습니다.
간호사는 아무 것도 내세울 것 없던 그 청년과 마침내 혼인을 하여 아들을 낳았는데, 그 아이가 바로 인천 주안장로교회 주승중 목사입니다.
어떤 이들은 세상 모든 일들은 다 우연의 연속이라고 말합니다만, 그렇지 않습니다. 역사에 우연은 없습니다.
때때로 우리의 눈에도 그것들은 우연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그것들은 그냥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길이 개입된 섭리적 우연입니다. 하나님의 섭리와 주권에 의해 만들어져가는 필연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이미 우리의 삶 속에서 시작이 되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을지라도 온 우주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지금까지 우리의 삶을 주관해왔고 지금도 주관하고 계시며 앞으로도 주관하실 것입니다.
지금은 이해가 안 될 수도 있습니다. 왜 나에게 이런 어려운 일이 생기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이해가 되지 않는 순간에도 삶의 어떤 순간에 놓여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섭리는 우리를 가장 선한 길로 조금씩 조금씩 인도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마지막 날에 우리는 깨닫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가 우리와 늘 함께 하셨다는 것을.
(위 글은 2021년 5월 30일 주안장로교회 주승중 목사의 주일설교 내용 일부를 재구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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