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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신앙

술 마시는 종교개혁가

by 날기새 2022. 5.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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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주일이었던 2021년 10월 31일 인천 주안장로교회 주일예배는 숭실대 교수 김회권 목사가 설교를 맡았습니다. 김회권 목사는 이날 설교에서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가 본격적으로 종교개혁의 투사로 나서게 된 계기는 1521년 4월 17일 독일(신성로마제국) 남부 보름스에서 열렸던 제국회의였다고 설명합니다.

 

"마틴 루터여. 그대가 많은 글을 썼다. 그대가 쓴 글 중에서 교황님이 매우 노여워하시는 내용이 있는데, 이것을 삭제할 의사가 있는가?"
"하루만 시간을 주십시오." 하면서 루터가 물러나왔습니다. 그런데 루터가 하루 시간을 달라고 했던 이유는 철회할 마음이 있어서가 아니라 자신이 신중하게 생각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였습니다. 다음 날 다시 그 자리에 섰습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저는 단 한 문장도 철회할 마음이 없습니다. 내 양심은 하나님께 붙들려 있습니다. 나의 양심에 반하여 행동하는 것은 옳지도 않고 그래서도 안됩니다."

 

저 설교 내용만 들으면 마틴 루터는 일체 마음에 요동도 없이 담대하게 저렇게 말한 것처럼 느껴지는데, 사실은 이렇습니다.

루터가 95개조 반박문을 발표하자 교황 레오10세는 루터를 파문해버립니다. 독일 황제였던 카를 5세는 루터가 자신의 입장을 변호할 수 있도록 보름스 제국회의에 출두하도록 했는데, 비슷한 상황에서 얀 후스는 화형을 당한 전례가 있던 터라 모두가 루터에게 보름스 회의에 참석하지 말라고 뜯어말립니다. 4월 17일 첫 출석에서 대주교는 루터에게 95개조 반박문을 본인이 작성한 것이 맞냐고 물었고 루터는 그렇다고 대답합니다. 이어서 대주교가 지금도 그 생각이 변함없는지, 철회할 생각은 없는지 질문합니다. 여기서 루터는 대답을 못하고 고민하다가 하루만 시간을 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리고 숙소로 돌아가서 머리를 싸매고 번민하던 루터에게 친구가 찾아옵니다. 그는 바로 그의 후원자였던 칼렌베르크 공작. 칼렌베르크 공작은 루터를 격려하면서 루터가 좋아하던 아인베크 맥주를 선물하고 떠나는데요. 루터는 친구가 주고 간 아인베크 맥주 한 통을 다 마시고 술기운이 오른 상태에서 제국회의장에 들어가 분기탱천하여 거침없이 외쳤습니다. "저는 단 한 문장도 철회할 마음이 없습니다. 내 양심은 하나님께 붙들려 있습니다. 나의 양심에 반하여 행동하는 것은 옳지도 않고 그래서도 안됩니다."

 

평소 수줍고 내성적이기까지 했던 루터의 모습을 기억하던 사람들로선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맥주를 마시고) 담대하게 선포하는 마틴 루터



어디 그 뿐인가요?

 

이어지는 박해로 인해 루터가 실의에 빠지자 그의 아내는 상복을 입고 나타나 종교 개혁에 대한 루터의 마음가짐을 새롭게 했다는 일화는 매우 유명합니다. 이 일화에 등장하는 그의 신실한 아내 '카타리나 폰 보라'는, 심지어, 맥주 공장을 운영했습니다. 사회 각계 각층 지인들을 불러서 아내의 맥주 공장에서 생산된 맥주를 마시며 철학과 신학을 논할 정도로 루터는 맥주 애호가였습니다.

맥주를 얼마나 좋아했던지 그는 이런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맥주를 먹으면 잠이 잘 온다. 맥주는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다.

 

 

솔라 스크립투라(Sola Scriptura : 오직 말씀대로), 아드 폰테스(Ad Fontes : 근본으로 돌아가라)를 외쳤던 종교개혁가의 입에서 나왔다고는 상상하기 어려운 말이죠?


술에 대하여 열려 있는 마인드는 칼빈(칼뱅)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시편 104편은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에 대한 찬송시인데,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많은 은혜를 열거하면서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포도주와 사람의 얼굴을 윤택하게 하는 기름과 사람의 마음을 힘있게 하는 양식을 주셨도다" 라고 말하는데요. 칼빈은 기독교 강요 3권 10장에서 이 본문을 언급하면서, (포도주를 주신) 하나님의 목적은 우리를 즐겁고 유쾌하게 만드시려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루터가 "맥주는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라고 말했다면, 칼빈은 "포도주는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라고 말한 셈이죠.

 


물론 한국 개신교 역사의 맥락에서 왜 술을 마시는 것이 사실상 금기시 되었는지는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술은 우리 마음을 지나치게 이완시켜 김장감을 떨어뜨리고 실수를 저지를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취지를 망각한 채 술을 마시면 번개처럼 지옥불에 떨어지는 것처럼 상대방을 경멸&정죄하고, "나는 저들과 같지 아니 하니" 하면서 술 마시지 않는 자신의 모습을 의로 여긴다면 그것 또한 뭔가 잘못된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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