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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신앙

교회 세습을 옹호하는 목사들의 논리 살펴보기

by 날기새 2022. 5.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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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론의 자녀만 제사장 될 수 있어" 예장통합 진주남노회, 또 세습금지법 폐지 헌의

"아버지가 만든 교회에 아들 승계는 당연"…김충곤 노회장 "성경적이지 않은 법, 명성교회와 관련 없어"

www.newsnjoy.or.kr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교단 진주남노회가 지난 4월 21일 봄 정기회에서 목회지 대물림 금지 조항인 교단 헌법 28조 6항(소위 '목회 세습 금지법')을 삭제하자는 안건을 총회에 올리기로 결정했습니다. 한 마디로 교회 세습을 허용하자는 겁니다.


뉴스에 등장한 노회장인 김충곤 목사를 비롯한 진주남노회의 세습 찬성론자들의 주장을 정리해보면 이렇습니다.

"구약성경에도 아론의 자녀만 제사장이 될 수 있었으므로, 아버지가 만든 교회를 아들이 승계하는 건 성경적이다."
"세습금지법이 지금 한국교회를 망치고 있다. (이 법 때문에) 목사님 장로님 아들들이 신학교를 안 간다."
"영등포의 어느 교회는 아들이 아버지 대를 이어서 잘한다는 호평을 받고 있다."
"큰 교회는 안 되고, 작은 교회는 허용하도록 한 세습금지법은 형평성에도 맞지 않는다."
"큰 교회들이 있어야 큰일도 할 수 있는 거다."

이들의 주장을 보고, 성경의 이 말씀이 떠오르더군요.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

호세아 4장 6절




정말 지식이 없어 망할 수준인 듯합니다. 어떻게 저런 수준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백성, 어린 양들을 이끄는 '목자(牧者)'랍시고 그 자리에 있을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이들의 주장을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죠.


아버지가 만든 교회를 아들이 승계하는 건 성경적이다?


구약성경에도 아론의 자녀만 제사장이 될 수 있었으므로, 아버지 목사가 아들 목사에게 교회를 물려주는 것은 성경적이라고 말합니다. 교단이 난립하면서 신학교도 정말 우후죽순으로 세워졌었는데요. 그러다보니 정말 기본적인 지적 수준도 안되는 사람들까지 신학교에 입학해서 목사라는 타이틀을 달고 배출됩니다. 그 결과가 저런 궤변인 거죠.

자, 먼저 질문을 하겠습니다. 성경 말씀을 따르기 위해 세습을 하는 겁니까? 아니면 세습을 하기 위해 성경을 따르자는 겁니까? 가난하고 열악한 재정의 30년된 개척교회 목사가 어느 날 말씀 묵상을 하다가 '아! 구약성경에는 아론의 자녀만 제사장이 될 수 있었는데, 왜 우리는 아무나 목사로 세우고 있을까?! 이건 잘못된 일이야. 성경대로 돌아가자!' 하고 세습을 주장한 경우가 있습니까?

절대 없습니다. 중대형 교회, 재정적으로 안정이 되어 있고 목사 월급 걱정할 일이 없으며, 담임목사에 대한 처우가 아쉬울 것 없는 교회의 목사들만 세습의 당위성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주장하는 세습은 정말 '솔라 스크립투라'에 입각하여 말씀대로 살려고 몸부림치다 보니 세습도 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 게 절대 아니에요. 세습을 꼭 해야겠는데 그냥 세습을 주장하면 개인의 욕심으로 비춰지고 신앙적으로 위신이 안서니까 갖다붙이는 게 아론과 제사장 얘기라는 데 실상 아닌가요?

저건 가증한 일이요, 하나님의 관점에서 거짓 증언을 하는 행위입니다. 개인의 이익을 위해 하나님을 빙자하는 거짓 선지자에 불과합니다.


김충곤 목사 (출처 : 진주명성교회 유튜브)


뜬금없이 구약성경 말씀을 그대로 지키자고 주장하는 것도 어처구니 없습니다. 제사장직을 아론의 아들이 승계한 말씀만 문자 그대로 지켜져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수많은 말씀들도 똑같이 적용해야 하나요? 김충곤 목사님은 구약성경 말씀대로 돼지고기 안드시고 계십니까? 아, 그건 아니라고요? 제사장직 승계 대목만 지키면 된다고요? 왜요? 당신이 딱 그 말씀만 필요하니까?

그리고 제사장직의 승계는 개인의 이익과 무관한 그저 '성직(聖職)'의 승계였습니다. 당신들이 주장하는 승계는 정말 성직'만'의 승계를 의미합니까? 승계하려는 목회에 수반되는 개인적 이익이 완전히 배제된다면 그래도 그 승계를 성경적이다 주장하시겠어요?



세습금지법 때문에 목사님 장로님 아들들이 신학교를 안 간다?


저 발언은 제가 당사자였다면 절대 하지 않았을 발언입니다. 설령 맘 속에 저런 생각이 들었더라도 꼭꼭 숨기고 하지 말았어야 할 발언이에요. 왜냐면, 저 발언은 세습금지법을 반대하는 진짜 의도가 무엇인지, 저급하고 추악한 욕심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습금지법 때문에 목사, 장로 아들들이 신학교에 안 간다? 이걸 돌려서 말하면, 자기 아버지 목사나 장로의 교회를 물려받을 수 없다면 목사가 될 생각이 없다는 얘기입니다. 애시당초 그들이 신학교에 가는 이유와 목적은 무엇이었던 걸까요?

어떤 연인이 이런 대화를 나눈다고 상상해보시죠.

A : 사랑해. 나와 결혼해주겠어?
B : 나도 널 사랑해. 단, 조건이 있어. 신혼집은 서울 강남/서초/송파구에 위치한 전용 면적 84㎡ 이상의 아파트에 은행 대출 없는 자가여야 하고, 너는 결혼 전에 7급이상 공무원이나 공기업, 그것도 아니면 최소 네카쿠라배당토 개발직군으로 입사를 해줬으면 좋겠어. 결혼식은 서울 소재 5성급 호텔에서 치러야 하고 신혼여행은 하와이나 몰디브로 최소 2주는 다녀올 수 있어야 해. 아 참, 네가 모는 차량과 별도로 내 차는 랜드로버 레인지로버 LWB로 희망해. 네가 이 모든 것을 다 준비하면 우리 바로 결혼하자.
A : 뭐라구? 너 날 사랑해서 결혼하겠다는 것 맞니?
B : 그럼! 나는 널 사랑하니까 결혼하려는 거야. 그런데 내가 말한 걸 다 준비해주지 않으면 결혼 안 해.


아버지가 담임목사, 위임목사로 있는 대형교회를 물려받을 수 없다면 신학교를 가지 않겠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의 사역을 꿈꾸는 것이 아니라 일확천금 돈벌이를 할 수 있는 꿈의 직장을 원한다고 스스로 고백을 한 겁니다. "부름 받아 나선 이 몸 어디든지 가오리다 아골 골짝 빈들에도 복음 들고 가오리다(찬송가 323장)"가 아니고 "부름 받아 나섰어도 아무 데나는 안가리다 우리 아빠 시무 교회에 스카웃 아니면 안가리다" 하겠다는 거잖아요. 그게 목회자로서의 소명이 맞습니까? 제가 보기엔 전형적인 삯꾼 목사로 들리는데요.

얼마나 양심에 화인을 쳐 맞았으면 저런 부끄러운 발언을 세습금지법 철폐의 근거랍시고 기자 앞에서 얘기를 하는 걸까요?

출처 : 연합뉴스


영등포의 어느 교회는 아들이 아버지 대를 이어서 잘한다는 호평을 받고 있다?


뉴스에서 김충곤 목사가 목회세습을 정당화 하는 사례로 언급한 '영등포의 어느 교회'는 영등포 도림교회를 가리킨 것입니다. 도림교회는 영등포교회 교인들이 1929년에 설립된 교회로서, 1947년에 유병관 목사가 제3대 담임목사로 부임하여 30여년간 시무하다가 1973년 유병관 목사의 아들인 유의웅 목사가 제4대 담임목사로 부임함으로써 교회를 세습하였습니다. 유의웅 목사도 약 30여년간 시무했는데 지난 2007년 제5대 목사로 정명철 목사가 부임하고 본인은 자신의 부친과 같이 원로목사로 추대되었습니다.

도림교회 유의웅 원로목사

하지 말아야 될 일을 했는데 결과가 좋았다는 이유로 그 일이 정당화 될 수 있습니까? 일제가 조선을 침략했는데 결과적으로 조선에 신문물을 도입하고 사회문화적으로 많은 진보를 가져오는 긍정적인 측면도 많았다고 해서, 침략행위가 정당화 될 수 있는 건가요? 쿠데타로 정권을 잡고 독재를 한 박정희도 '한강의 기적'이라고 불리우는 대한민국의 근대화와 산업발전에 명백한 기여를 한 것은 역사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를 명분으로 다른 나라에서 쿠데타가 벌어지고 독재정권을 수립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말한다면 그 사람은 미치광이일 뿐입니다.

김동호 목사는 부동산 업자의 투자 권유로 지방의 땅을 매입한 적 있는데 매입하려는 땅의 일부가 농지여서 해당 지역으로 주소지를 옮겨야 했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그것이 잘못된 일인 줄 모르고 있다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그것이 위장전입이라는 것이라는 걸 깨닫고 부랴부랴 땅을 처분했고, 처분한 수익은 내지 않아도 되는 양도소득세와 공익재단 설립에 사용했습니다. 그럼에도 불의한 일을 했다는 죄책감이 그를 따라다녔으며, 주민등록등본을 뗄 때마다 두 눈으로 확인하게 되는 위장전입 이력이 내내 그를 부끄럽게 만들었다고 고백했습니다.

결과가 좋았던 사례도 있으니 불의한 일을 눈감아 달라구요? 대를 이어서 잘 한다는 호평은 하나님의 호평입니까 아니면 당신들의 호평입니까? 시편 51편 16~17절 말씀을 들려드리겠습니다.

"주는 제사를 즐겨 아니 하시나니 그렇지 않으면 내가 드렸을 것이라 주는 번제를 기뻐 아니 하시나이다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큰 교회는 안 되고, 작은 교회는 허용하도록 한 것은 형평성에도 맞지 않는다?


세습금지법에서 '큰 교회는 안 되고 작은 교회는 허용한' 이유를 똑같이 당신들 삯꾼 목사들에게 돌려서 질문하겠습니다.

큰 교회는 기를 쓰고 세습하려고 하고, 작은 교회나 재정적으로 열악한 교회, 이름 없는 교회에서는 당신들이 세습에 전혀 관심이 없는 이유가 뭔가요? 당신들이 이 질문에 답변을 찾으시면 자연스레 형평성 얘기는 쑥 들어가실 겁니다.


큰 교회들이 있어야 큰 일도 할 수 있는 거다?


맞습니다. 큰 교회들이 감당할 큰 일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저는 큰 교회를 무조건 쪼개려는 해체 일변도의 교회개혁에는 반대하는 편입니다.

하지만 세습금지법은 큰 교회를 해체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 큰 교회들을 당신 삯꾼목사들이 사유화하는 것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당신들이 아니어도 큰 교회는 더 좋은 목사, 더 좋은 장로, 더 좋은 성도들이 잘 섬기고 이끌어 갈 수 있습니다. 당신들만이 큰 교회를 잘 이끌 수 있을 것이라는 착각은 버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착각은 하나님의 능력과 공로를 자신의 것으로 돌리는 이율배반적이고 이단적인 생각에서 나옵니다.




결론 : 세습에 목매는 대형교회 목사들은 부자 청년과 같다.


살펴보았듯이 목회세습, 교회세습을 금지해야 하는 이유는 신학적으로나 논리적으로 자명하며, 반면, 그를 옹호하는 이들의 주장은 터무니 없습니다. 하지만 신학을 공부하고 영성 있는 삶을 살았을 법한 일부 목사들은 세습금지법을 철폐해달라는 뻔뻔한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이 수준 낮은 목사들을 어찌해야 할까요?

제가 보기에 교회 세습, 목회 세습에 목을 매는 일부 대형교회 목사들은 마태복음에 등장하는 부자 청년과 매우 흡사합니다.

어떤 사람이 주께 와서 이르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네가 생명에 들어 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 이르되 어느 계명이오니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니라 그 청년이 이르되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온대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마태복음 19장 16~23절)


사실 부자 청년은 매우 건실한 사람이었습니다. 율법을 잘 지켰고 이웃을 위해 자신의 재물을 사용하는 모범적인 신앙인이었죠. 하지만 예수님은 그의 마음 속에 '선(line)'이 있다는 사실을 간파하셨습니다. 자신의 삶에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대단히 신앙적인 삶을 살았지만, 그는 결코 하나님이 그 선을 넘어오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그를 테스트 해보신 것입니다.

부자 청년과 예수님


이런 부분은 우리 삶에서도 조명해 볼 수 있습니다. 단적인 예가 십일조인데요. 십일조는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입니다" 라는 신앙 고백의 표현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이니 다 하나님의 것이지만, 우리도 기본적인 생활을 해야 하므로, 그런 신앙과 사고방식의 '측정 지표'로서 1/10을 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너지면 '측정 지표'에 경고가 울리게 되고, 우리의 신앙과 사고방식이 그와 같지 않다라는 것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게 뒤바뀌어버리면 문제가 발생합니다. 십일조가 '측정 지표'가 아니라 '최대치의 경계선'이 되어버리는 것 말입니다. 십일조는 변함없이 드리고 있지만, "하나님! 당신이 가져갈 수 있는 건 딱 여기까지예요. 그 이상은 손 대지 마세요. 이건 내 몫입니다." 라고 생각해버리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부자 청년이 바로 이 경우였습니다.

세습에 목숨을 거는 목사들도 다 멀쩡히 설교를 하고, 헌금도 잘 하고, 선교도 잘하고, 겉으로 보기엔 너무나 은혜롭고 모범적인 삶을 살아갑니다. 하지만 세습을 옹호하는 순간, 그들 목사들은 하나님과 자신의 사이에 이미 선을 그어버린 것입니다.

하나님!
열심히 설교하고 전도하고 선교할게요.
더더욱 교회 부흥성장시킬게요.
헌금도 더 많이 하겠습니다.
십의 일 조가 아니라 십의 이조, 십의 오조라도 드릴게요.
하지만 이 교회는 제 것입니다.
제가 만들고 피땀흘려 키운 제 교회란 말입니다.
이 교회만큼은 손 대지 마십시오.
이 교회는 제 아들에게 물려주겠습니다.
하나님도 동의해주셨으면합니다.


그런 목사들에게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들은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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