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교회 버스에 부착된 광고물(위 사진)을 보고 어안이 벙벙해졌습니다. 마케팅/PR 측면에서 참사에 가까운 광고물이며, '교회式' 마케팅의 수준을 잘 드러내주는 사례입니다.
1. 메인 카피의 정체성이 불분명합니다.
동성애자 부모가 애끓는 이유가 자식이 동성애자여서인가요? 아니면 자식이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평범한 삶을 살지 못하고 사회적으로 매장 당하기 때문인가요? 광고 카피 제작자는 당연히 교회의 오더를 받아 만든 문안이기에 교회의 입장에서 저 문구를 해석하지만, 아무런 배경 지식도 없이 느닷없이 저 카피를 접하는 대중은 열린 가능성을 두고 머리 속에서 문구를 해석하게 됩니다. 저는 처음에 저 문구를 보고 동성애 옹호측에서 내건 광고물인 줄 알았습니다.
2. 소구 포인트가 잘 못 되어 있습니다.
광고물에서의 말하는 부모의 애가 끓는 주된 이유는 종교적 이유입니다. 하지만 저 광고물은 대중을 위해 제작된 것이고, 대중의 정서는 결국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입니다. 비기독교인 조차도 동성애에 비후보적인 정서가 팽배한 한국임에도, 그런 자식이 동성애 때문에 차별받고 멸시당한다면 그 상황이 가슴 아픈 게 우리 나라 부모의 정서입니다.
3. 광고 매체 특성에 대한 이해가 없습니다.
버스 외부 부착물(랩핑) 광고는 다중에게 매우 짧은 시간 노출되므로 많은 정보의 전달이 불가능하고, 관심도가 높지 않은 사람들에게 추가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그런 버스 광고에 정체성도 불분명한 메인 카피를 적어놓고 추가 정보를 얻으라며 QR코드를 삽입하는 것은 정말 이 매체 광고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도가 있는지를 의심하게 합니다. 저 버스 옆을 지나가는 운전자나 동승자들이 그 짧은 시간에 카메라를 켜서 저 QR을 찍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4. 문제의식에 대한 선명도가 떨어집니다.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안 = 동성결혼 합법화의 전 단계?' 이 문구는 무엇을 의도한 것인가요?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안 내용은 동성결혼 합법화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의심은 되지만 아직 확신은 없다?
그런 미적지근한 문제의식으로 이 광고물을 보는 사람들로부터 어떤 반응을 끌어낼 수 있을까요? 위에서 말씀드렸듯, 대부분의 사람들은 빨간색 메인 카피만 읽고 그 밑에 보조카피는 읽을 기회도 없습니다만, 그나마 좀더 관심을 갖고 보조 카피를 읽은 사람들 조차도 이 광고물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대해 경각심을 갖거나 더 많은 정보를 찾아보게끔 하는 유인력이 전혀 없습니다.
5. 결국 남는 것은 메인 카피의 '느낌' 뿐...
'동성애자 부모의 고백'을 볼 수 있는 QR코드를 찍는 사람은 극소수일 것이고, 본다 하더라도 종교적 감수성 없이는 100% 공감하기 힘든 내용이며, 결국 지나가든 사람들은 '애끓은 동성애자 부모' 라는 중립적인 문구밖에는 기억하지 못합니다. 문제는 이 문구가 이 광고물이 의도한 반대의 메시지를 도와주는 쪽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유명한 사례로 '따봉'이 언급됩니다. 오렌지 주스 광고 기획자는 '따봉'이라는 단어가 그렇게 히트를 칠 줄 전혀 몰랐지만, 오렌지 주스 광고를 본 대중은 오직 '따봉'만을 기억했습니다. 문제는 그 오렌지 주스가 '델몬트'인지 '썬키스트'인지를 기억하지 못했던 거죠. 이 광고를 기획한 델몬트는 경쟁사의 썬키스트의 매출까지 덩달아 올려주는 바보같은 짓을 한 셈이 되었습니다.
이 버스 광고는 이 광고를 접한 대중이 동성애자들의 차별과 관련한 뉴스를 접할 때, '동성애자 부모의 애끓는 심정'이라는 문구의 기억이 도리어 그들의 입장을 이해하고 연민을 갖게 만드는 부작용을 일으킬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이 광고는 당장 중단되어야 합니다.
이 광고를 기획하신 분은 보다 선명하면서도 동성애에 대한 우리 나라사람들의 부정적 인식과 쉽게 결합될 수 있는 쉬운 표현으로 메인 카피를 고민해야 합니다. 비둘기 같이 순결하면서도 뱀과 같이 지혜로원야 하는 게 우리 크리스천 아닌가요?
'대한 없는 비판은 누구나 할 수 있다고 지적하시는 분들을 위해, 미리캔버스를 이용해 샘플 광고물을 하나 만들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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