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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목자

박창하 목사(은퇴)

by 날기새 2022. 4.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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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하 목사(왼쪽)와 그의 아들 박순진 목사



박창하 목사는 전도사였던 1976년 9월에 북부천교회에 부임했습니다. 북부천교회는 1975년 3월에 창립되었으나 안정을 이루지 못하고 이미 2명의 목회자가 교회를 떠난 상태였습니다. 세 번째 목회자로 부임한 박창하 전도사는 1977년 4월에 목사 안수를 받고 같은 해 7월, 교회 이름을 북부천교회에서 복된교회로 개명하였습니다. 부천복된교회는 박창하 목사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600명이 모이는 중형교회로 성장합니다.

1980년초 교단 총회(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에서 교회 분립을 장려하는 공문이 내려오자 박창하 목사는 이에 순종하여, 부목사였던 오길용 목사에게 교인 200명을 이끌고 '빛된교회'를 창립하게 합니다. 이것이 박창하 목사의 분립/개척 사역의 시작이었습니다.

1987년 박창하 목사가 시무하던 부천복된교회는 성도 1,600명으로 성장하였고, 새성전 건축을 위한 대출금을 모두 상환하여 헌당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그때 헌당기념으로 두 번째 분립/개척을 놓고 기도하던 박창하 목사는 "네가 나가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부천복된교회 전경


전도사로 부임하여 맨손으로 키운 교회를 포기하고 다시 시작하라는 성령의 감동이 있었을 때 그에 순종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명성교회 김삼환 목사나 중문교회 장경동 목사의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네가 어떻게 키운 교회인데!" 라는 마음을 억누르고 "나는 무익한 종입니다, 내 공로는 없습니다, 주인의 말씀에 순종할 뿐입니다" 를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은 말처럼 쉽지가 않습니다. 그런데 박창하 목사는 그것을 해내고야 맙니다.

1987년 11월 박창하 목사는 복된교회 담임목사를 사임하고, 복된교회가 위치한 도심에서 8 km 떨어진 사과밭에 교인 106명과 함께 부천참된교회를 창립하여 담임목사를 맡게 됩니다. 그의 두 번째 분립/개척교회 사역이었죠.

이후로도 부천참된교회는 매년 출석성도가 300명씩 늘어날 정도로 성장에 성장을 거듭했지만, 박창하 목사는 부천참된교회가 대형교회가 되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박창하 목사가 분립/개척한 교회는 다음과 같습니다.

  1. 빛된교회, 오길용 목사, 1984년 9월(분립)
  2. 부천참된교회, 박창하 목사(본인), 1987년 11월(분립)
  3. 믿음교회, 김중덕 전도사, 1989년 3월(분립)
  4. 영원한교회, 최경구 전도사, 1992년 3월(분립)
  5. 잘된교회, 권상오 목사, 1992년 9월(분립)
  6. 예향교회, 양성은 목사, 1994년 6월(분립)
  7. 금문교회, 박재감 목사, 1994년 9월(분립)
  8. 본향교회, 김종기 전도사, 1994년 11월(분립)
  9. 정읍참된교회, 정점룡 전도사, 1995년 9월(개척)
  10. 포항참된교회, 최기환 목사, 1995년 11월(개척)
  11. 충만교회, 이창악 목사, 1995년 11월(개척)
  12. 주왕교회, 박신철 목사, 1997년 9월(분립)
  13. 참사랑교회, 고영준 목사, 1997년 11월(분립)
  14. 온유한교회, 신철이 목사, 1998년 6월(분립)
  15. 부평참된교회, 정규태 목사, 1999년 3월(개척)
  16. 길벗교회, 길동호 목사, 1999년 4월(분립)
  17. 부개교회, 배광호 목사, 1999년 5월(분립)
  18. 예동교회, 신명희 전도사, 1999년 7월(분립)
  19. 길가는교회, 임원일 목사, 2000년 2월(분립)
  20. 주원교회, 조병성 목사, 2000년 3월(개척)
  21. 부광교회, 김낙원 목사, 2000년 9월(분립)
  22. 원주참된교회, 이명수 전도사, 2000년 11월(개척)
  23. 샬롬교회, 박명하 목사, 2001년 3월(개척)
  24. 생명의교회, 김명환 목사, 2001년 4월(분립)
  25. 구미참된교회, 손교식 목사, 2001년 4월(개척)
  26. 멋진교회, 황금성 목사, 2001년 10월(분립)
  27. 시흥참된교회, 김도식 전도사, 2001년 11월(개척)
  28. 주성교회, 박봉길 목사, 2002년 6월(개척)
  29. 가나교회, 박봉호전도사, 2003년 1월(개척)
  30. 함께하는교회, 이경재 목사, 2003년 6월(분립)
  31. 영상교회, 문충모 목사, 2004년 2월(분립)
  32. 한우리교회, 박성배 목사, 2004년 3월(분립)
  33. 산울교회, 김충호 목사, 2005년 4월(분립)
  34. 성빛교회, 2005년 5월(인수)
  35. 미국 뉴욕참된교회, 박순진 전도사, 2005년 5월(개척)
  36. 참즐거운교회, 김동호 목사, 2005년 8월(분립)
  37. 열방교회, 이판수 목사, 2006년 4월(분립)
  38. 지리산교회, 오영화 목사, 2006년 11월(개척)
  39. 군서교회, 2007년 4월(인수)
  40. 낙원교회, 2007년 4월(인수)
  41. 새물결교회, 서봉재 목사, 2007년 8월(분립)
  42. 꿈꾸는교회, 이민규 목사, 2008년 3월(분립)
  43. 승영교회, 서은종 목사, 2008년 5월(개척)
  44. 부천중앙교회, 김석은 목사, 2008년 11월(분립)
  45. 부천교회, 김영실 목사, 2009년 2월(분립)
  46. 대전참된교회, 이용혁 목사, 2009년 3월(개척)
  47. 부천아름다운교회, 양황승 전도사, 2009년 8월(분립)
  48. 참소망교회, 정병덕 목사, 2009년 10월(분립)
  49. 조은교회, 구교황 목사, 2011년 2월(분립)
  50. 참사랑교회, 현재용 목사, 2011년 10월(분립)
  51. 화목한교회, 최원민 목사, 2012년 9월(분립)
  52. 김포빛된교회, 박창하 목사, 2013년 11월(분립)


이렇게 37년동안 총 52개의 교회를 분립/개척하거나 재정적 어려움으로 폐쇄 위기에 있던 교회를 인수하여 안정화시키는 노력을 해왔습니다(해외 선교사 파송 건은 리스트에서 제외하였음).

박창하 목사의 교회 분립은 대형교회들의 지성전 건립과 완전히 다릅니다. 장신대 한국일 교수는 대형교회의 지성전 건립은 참된 선교가 아니라 '선전(宣傳)'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지교회 제도에서는 선교와 선전이 서로 혼돈되고 있는 현상을 발견한다. 선교와 선전은 동일한 것이 아니다. 선교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이름만을 높이나, 선전은 그 복음의 전달자인 교회 자신의 이름을 전하는 것이다. 선전은 교인을 얻기에 급급하여 선교활동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람들을 교회로 인도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그러나 선교는 교회가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행위이다. 선교는 물론 결과적으로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을 기대하고 있지만, 자기 교회의 유지와 확장에 목적을 두는 것이 아니라 어느 교회에 소속될지라도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그러나 교회 선전은 지명도가 있는 목회자와 교회의 인지도를 사용하여 기존의 지역 교회에 소속된 교인들을 유혹할 수 있다. 이러한 선전행위 이면에는 문화우월주의와 제국주의적 요소가 있음을 부정할 수 있을까?


박창하 목사는 수천 수만명이 모이는 대형교회의 담임목사가 될 기회가 있었지만, 자신의 교회와 자신의 이름이 높아지기보다는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더 우선시했고 이를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 편을 기꺼이 선택했습니다. 교회의 부흥을 통해 대형교회로 나아가지 않고, 부흥을 한국교회와 지역사회와 나누어 함께 성장하는 교회의 모범이 된 박창하 목사는 2013년 기독교윤리실천운동로부터 표창을 받기도 했습니다.


사실 50여개 교회를 분립/개척한 경력만으로도 교계의 주목을 받기에 충분했었으나, 그는 "자랑할 것이 없다"며 그가 시무하던 기간에는 흔한 교회 홈페이지조차 만들지 않았습니다. 박창하 목사는 핸드폰도 없었고, 자가용 대신 전철과 버스를 타고 다녔습니다.

위 리스트의 35번째 개척교회에 부임한 목회자는 박순진 전도사인데, 박창하 목사의 아들입니다. 김삼환 목사가 페이퍼교회를 세워서 아들 김하나 목사를 보냈던 것과는 차원이 다르죠. 대형교회 담임목사직을 세습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아들에게까지 소명을 심어주었다고 보시는 것이 정확합니다. 뉴욕참된교회는 뉴저지참된교회로 이름을 바꾸고 현재까지도 맡은 사명을 잘 감당해가고 있습니다.

뉴저지 참된교회 박순진 목사


그리고 위 리스트에서 볼 수 있듯이 박창하 목사의 마지막 분립은 2013년 김포빛된교회입니다. 박창하 목사는 정년을 3년을 남긴 시점에 부천참된교회 담임목사를 사임하고 자신이 직접 마지막 분립교회의 파송 목회자가 됩니다. 편안히 원로목사 대접을 받을 수 있었음에도 모든 영광과 권리를 스스로 포기하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끝까지 헌신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입니다. 교인 20여명과 함께 상가건물 7층에 김포빛된교회를 창립한 박창하 목사는 2014년 4월 은퇴할 때까지 교인 120명이 출석하는 교회로 성장시키고 후임 목회자에게 교회를 맡기고 자신의 사역을 마칩니다.

박창하 목사의 은퇴 후에도 그의 영향력을 필요로 하는 사건이 발생하게 됩니다.

박창하 목사의 뒤를 이어 부천참된교회를 맡았던 장창진 목사


박창하 목사의 뒤를 이어 부천참된교회 담임목사를 맡은 장창진 목사가 장로 부정선거 구설수에 휘말리게 된 것입니다. 부정선거에 대해 책임을 통감한다며 사퇴할 것처럼 나오던 장창진 목사가 돌연 사퇴를 거부하면서 부천참된교회는 장창진 목사 옹호파와 반대파(비대위)로 나뉘어 2년동안 극렬한 갈등에 휩싸이게 됩니다.

돌파구를 찾지 못하던 위기의 순간에 박창하 목사가 나타나 요한복음 16장 21절에서 해산의 기쁨으로 출산의 고통을 잊은 여인처럼,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분립을 전제로 화해를 중재했습니다. 한그루 큰 나무보다는, 작은 나무들로 숲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던 참된교회의 역사 안에서 박창하 목사의 중재에 양측 모두 공감했습니다. 결국 비대위 측이 '예원참된교회'를 분립/개척한다는 합의를 통해 부천참된교회는 모든 갈등을 마무리 지었습니다. 갈등을 끝내고 새롭게 교회를 분립한다는 소식에 총 11명의 장로들이 교회에 함께하게 됐고, 혼란스럽던 교회를 떠나 있던 성도들도 다시 성전으로 돌아왔습니다. 그야말로 박창하 목사는 분립으로 사역을 시작해 분립으로 사역을 마무리한 셈입니다.

박창하 목사는 은퇴목사나 원로목사 자리를 포기했었기에 양측 합의서에 초대목사로 기재되어 있다.


박창하 목사는 은퇴목사가 교회에 부담을 주면 안된다며 현재도 설교나 교계 활동을 자제하고 있다고 합니다. “명한대로 행하였다고 종에게 사례하겠느냐.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라는 누가복음 17장 9-10절 말씀을 떠올리게 하는 삶입니다.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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