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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목자

청량리중앙교회 故 임택진 목사(은퇴)

by 날기새 2021. 10.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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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기새 김동호 목사님의 설교에 종종 등장하는

청량리중앙교회 임택진 목사님에 대한 요약 글입니다.

 

고 임택진 목사

(1916 ~ 2007)


 약력


  • 1916년 평안남도 중화 출생
  • 평양신학교
  • 1952년 제주노회 목사 안수 후 제주 서귀포 피란민교회에서 목회
  • 1959년 청량리중앙교회 부임
  • 1981년 청량리중앙교회 원로목사
  • 2007년 소천(향년 91세)

 

 


임택진 목사에 대한 기억과 일화


임택진 목사님은 나를 디모데처럼 키우셨다. 교단 총회장이 되셨을 때 일년 동안 목회 전체를 나에게 위임해 주시고 당신은 주일 설교만 하셨었다. 목회계획과 예산편성 그리고 목회 전체를 31살이었던 나에게 맡겨주시고 위임해 주셨다. 그 때 많이 클 수 있었다.

목사님은 나에게 대학원을 가라고 하셨다. 해마다 대학원을 권유하셨다. 삼년 째 되는 해에는 당시 약국을 경영하고 있던 세 자녀들로부터 대학원 등록금을 걷어(?)가지고 나에게 주시며 대학원 가라고 거의 명령하셨다. 논문을 쓸 때가 절정이었다. 목사님은 교회 일을 많이 줄여 주셨다. 전임전도사였는데 파트타임 전도사처럼 일하고 학교 도서관에서 살았다. 그 때 그나마 뒤늦게 공부다운 공부를 한 것이 평생 목회의 큰 본전이 되었다.

목사님이 어느 큰 교회 잡지에 나에 대한 이야기를 쓰셨었다.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면서 이렇게 이야기해 주셨었다. '디모데를 보는 바울의 심정이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김동호 목사, 2019년 글)

 


 

1981년 12월 마지막 주일에 23년 동안 충성스럽게 교회를 섬기신 임택진 목사님의 은퇴식이 있었다. 임택진 목사님은 내가 자라난 청량리중앙교회의 원로목사님이셨다. 내게는 스승이며 영적인 아버지와 같은 분이다. 당시 부목사였던 내가 사회를 맡은 은퇴식에서 가장 잊을 수 없었던 것은 임 목사님의 인사였다.  
 
목사님의 인사는 약 10초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명한대로 행하였다고 종에게 사례하겠느냐.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 뿐이라 할지니라.” 라는 누가복음 17장 9-10절 말씀을 암송하신 후 “무익한 종은 물러갑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하고 인사를 마치셨다. 

 

(김동호, "참 좋은사람" (도서출판 가이드포스트, 2007). P.22~25)

 

 


 

내가 서울에 볼일이 있을 때 명일동에 있는 임 목사님 댁을 방문한 적이 몇 차례 있었다. 어떤 때는 눈치도 없이 점심식사 시간에 들러 목사님 내외와 함께 식사를 하기도 했다. 한번은 내가 댁으로 가서 모시고 나와 점심대접을 하려고 연락을 드렸을 때였다. 전화를 받으신 목사님은 "멀리까지 들어올 것 없다"고 말씀하시고 장신대 전철역 '만남의 장소'에서 만나, 광장동의 한 음식점에서 점심식사를 하며 얘기를 나누었다. 장신대역 만남의 장소는 그 후에도 몇 차례나 목사님과 나와의 약속장소가 되었다. 함께 얘기를 나눌 때면 목사님의 화두는 언제나 한국교회가 본연의 모습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내가 뜻하지 않은 어려움을 겪은 후 해가 바뀌고 많은 시간이 흐르고 임 목사님을 만났을 때였다. 장신대 앞 조용한 경양식 집에서 식사를 하고 나서 목사님은 요즘도 많은 액수에 해당하는 봉투를 쥐여 주고 달아나듯 음식점을 나가셨다. 나는 두고 나가신 안경을 전해드리려 한참이나 목사님을 뒤좇아 가야 했다.

 

(안유환, "임택진 목사님을 생각하며" (한국기독공보, 2010.05.26))

 

 


 

청량리중앙교회에서 임택진 목사 회갑 선물로 3 돈짜리 금 반지를 드렸다. 임 목사는 끼지도 못하시고 다시 들고 오셨다.

 

"고맙습니다. 
그런데 나 이거 못 낍니다. 
우리 교회는 한 달에 쌀 한 말이라도 도와줘야만 사는 가정이 
50 가정이 넘습니다. 
나 이거 끼고 목회 못합니다."


이렇게 말씀하시고 눈물을 흘리셨다. (날기새 270회)

 

 

 


 

임택진 목사 사모님(박순희 권사)이 "난 가난이 싫어." 라고 말씀하신 것을 듣고, 얼마나 힘들게 사셨으면 그런 말씀을 하실까 김동호 목사는 마음이 아팠다. 그런데 사모님은 뒤이어 말씀하셨다. "그런데 가난이 무섭진 않아." (날기새 844회)

 

 

 


 

임택진 목사는 한국 교회에 최초로 '목사, 장로 정년제도'를 제안한 분이었다. 당초 총회에 65세 정년으로 제안했으나, 총회에서 70세로 수정하여 제도화되었다. 하지만 임택진 목사 본인은 처음 제안한대로 65세에 은퇴하셨다.


은퇴하신 후 교회에서 원로목사에게 지급하는 생활비가 당시 월 40만원이었는데, 다른 비슷한 규모의 교회에서 원로목사에게 지급하는 금액보다 적은 수준이었다. 김동호 목사가 "서운하지 않으세요?" 라고 묻자, 임택진 목사는 "효자 아들보다 낫지 뭐. 어느 아들이 나한테 꼬박꼬박 한 달에 40만원씩 갖다 줘? 감사하지." 하고 말씀하셨다. 

 

(날기새 86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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