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약력
- 1985년 한양대학교 금속공학과 및 동 대학원 졸업(공학 석사)
- 1992년 장신대 신대원 졸업(M.Div = 목회학 석사)
- 1997년 콜롬비아 신대원 졸업(Th.M = 신학 석사)
- 2003년 클레몬트 신대원 수료(Ph.D 과정 = 철학 박사)
- 2003년 경북 안동교회 9대 담임목사 부임(현재)
■ 김승학 목사의 삶, 그리고 사람을 대하는 자세
김승학 목사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기 전에 안동교회의 역사부터 설명을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1884년 알렌 선교사, 1885년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선교사가 인천 제물포항으로 들어오면서 한국 개신교 선교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1906년에는 안동시 나룡면 나소동 자리에서 전도 집회가 열렸고 이를 계기로 안동지역에도 신자가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1908년에는 안동 선교부가 설치되어 쏘텔 선교사가 임명되었고 안의와(James E. Adams) 선교사는 인근 지역 풍산교회 교인인 김병우 씨로 하여금 안동시 대석동에 초가 5칸을 사들이게 하여 서원을 열었습니다. 1908년 8월 9일 주일에 이 초가집에서 김병우 씨를 포함하여 7명의 신자가 예배를 드린 것이 안동교회의 창립일이 되었습니다. 1911년 9월 평양신학교를 나온 김영옥 목사가 초대목사로 취임하고 1913년 7월 김병우 씨가 장로로 장립됨으로써 비로소 교회의 기본적인 형태를 갖게 됩니다.
100년이 넘는 교회 역사를 갖고 있기에 대한민국의 역사 속에서의 족적도 남다릅니다. 안동교회는 1919년 안동지역 3.1만세 운동을 주도하였으며 이로 인하여 안동교회 교인 9명이 복역하였습니다. 민주화 운동이 한창이던 1980년에는 장청 선교교육대회를 주관하며 민족과 함께 하는 교회로서 그 역할을 감당해 왔습니다.
안동지역 개신교회의 시작이 안동교회였기 때문에 안동지역에 수많은 교회들을 분립 개척하였을 뿐 아니라 타교파와 타 교단 개척에도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안동교회는 장로교단 소속임에도 불구하고 1951년 안동에서 감리교단의 교회(안동제일감리교회)가 개척되었을 때 목사 급여를 후원하고 건축헌금을 보냈다고 합니다. 당시 안동교회 담임이던 김광현 목사는 조상국 집사에게 안동교회를 떠나 그 감리교회로 가서 섬겨줄 것을 당부했다고 합니다. 조상국 집사는 김광현 목사의 당부대로 안동제일감리교회로 가서 초대 장로가 되었고, 교회가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헌신했다고 하네요. 1974년 안동제일감리교회가 화재로 예배당이 소실되었을 때 안동교회는 정성껏 건축헌금을 모아 지원했습니다.
또 안동교회는 1953년 성결교회가 설립될 때도 전도집회를 적극 지원하였고, 구세군교회가 안동에 정착하는데도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심지어 가톨릭 성당을 세울 때도 협력하였다고 하니,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교단과 교파를 가리지 않고 진정으로 어머니교회 역할을 다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안동교회는 교육에도 남다른 열정을 보이며 안동지역 최초로 사립유치원인 안동유치원을 1948년 개원하였으며 장학사업에도 적극적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김승학 목사는 7대 김광현 상원로목사(2006년 소천), 8대 김기수 원로목사(2007년 소천)의 뒤를 이어 안동교회의 9대 담임목사로 시무하고 있습니다. 일부 대형교회들이 자녀를 후임 목사로 세우는 등 세습 논란을 일으키며 교회를 사유화하고 있지만, 안동교회는 아름다운 세대교체의 모범을 보여주며 '사람이 주인이 되는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인이 되는 교회'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특히 서로 세력 다툼을 일으킬 수 있는 원로목사와 시무목사 간에 일체의 다툼이 없이, 서로 존중하고 격려하며 목양의 사역에 덕을 세워가는 모습은 여러 차례 조명이 된 바 있습니다.
안동교회의 아름다운 전통은 79년 김광현 목사가 은퇴하면서 시작되었는데, 뒤를 이어 부임한 김기수 목사가 은퇴한 김 목사를 부모처럼 섬기며, 원로목사 사택에 모시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예배의 축도 또한 김광현 원로목사에게 맡겨 성도들을 축복하는 자리에 설 수 있게 배려했습니다. 이런 모습은 김기수 담임목사가 은퇴한 후에도 이어져, 후임인 김승학 목사가 자신이 보고 배운 대로 마치 자식 된 도리를 다하듯 원로목사를 공경하며 섬겼고, ‘효‘를 중시하는 지역의 전통을 이어받은 기독교적인 모범으로 칭찬받았습니다.
김승학 담임목사는 이를 두고 “할아버지와 아버지, 손자가 한지붕 아래 오순도순 사는 모습 그대로입니다. 3대가 함께 교회를 섬기고 아름다운 관계를 유지하니 너무 좋습니다. 우리 교회에 내려오는 좋은 전통이며, 앞으로도 계속 유지될 것입니다." 라고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안동교회 담임목사실에는 두 원로목사 김광현 목사와 김기수 목사가 현 김승학 담임목사와 함께 찍은 사진이 결려 있는데, 이를 본 사람들은 가족사진처럼 너무나 아름다워 보인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이런 아름다운 교회 문화 때문에 기독교윤리실천운동(기윤실)이 주관하는 '2015년 좋은교회상'에서 안동교회는 '참 좋은 교회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안동교회 담임목사실을 방문해 본 사람들은 꼭 한 마디씩 하는 얘기가 있습니다. 바로, 석조예배당 안에 위치한 담임목사실이 너무 비좁더라는 거죠. 오래된 예배당 옆에 넓고 시설도 좋은 100주년 기념관이 있는데도 굳이 좁고 낡은 석조예배당 안에 담임목사실을 둔 이유를 물어보면 김승학 목사는 웃으면서 "역대 담임목사들이 대대로 사용해오신 공간이라 저도 그냥 계속 씁니다" 라고 대답한다고 합니다. 그의 진실하고 검소한 성품을 잘 나타내는 단면입니다.
여기까지는 언론이나 공개된 인터넷 자료를 통해 어느 정도는 알려져 있는 사실들입니다. 지금부터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 김승학 목사에 대한 일화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김승학 목사에 대한 한 선교사의 기억
한국에서 상당히 먼 축에 속하는 A국에 파송되어 사역하던 한 젊은 선교사님이 있었습니다. 비자 문제 등 처리할 일이 있어 잠시 귀국하게 되었는데, 이 선교사님은 주파송교회가 없던 터라 소액 후원을 하는 교회와 성도들이 많았습니다. 당연히 재정이 늘 부족했기에 국내에 들어올 때마다 선교 후원 의사를 내비치는 곳이면 어디든 방문하여 사역 계획을 설명하고 선교 후원을 요청하는 일이 일상이었습니다.
한 번은 안동 지역을 방문할 일이 있었는데, 만난 분이 안동에 온 김에 안동교회 김승학 목사님과 인사라도 한 번 하라고 권유했다고 합니다. 계획에 없이 만나 10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 몇 마디 나눈 게 전부였는데,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안동교회 청년부 목사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고 해요. 담임목사님으로부터 전해 들었는데, 큰 금액은 아니지만 청년부 차원에서 매월 선교헌금을 보내고 싶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렇게 안동교회와 인연이 맺어졌고 다른 후원교회와 마찬가지로 정기적으로 선교편지를 보내드렸다고 합니다.
여기까지도 지극히 평범한 이야기입니다. 놀라운 이야기는 이제 시작이 되는데요.
이 선교사님은 몇 년 후 또 다시 귀국할 일이 생겨 온 가족이 비행기를 타고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스무 명 정도의 청년들이 반가워하며 다가와 아는 척을 하더랍니다. 전혀 모르는 청년들이라 누구시냐고 물었더니 안동교회 청년들인데 태국으로 단기선교를 가는 길이라는 겁니다. 이 선교사님의 선교편지에 들어 있는 기도 제목을 놓고 청년국에서 항상 기도하고 있는데, 선교편지에 가족들의 사진을 보면서 항상 기도하던 터라 선교사님 가족 한 사람 한 사람 얼굴을 모두 기억하고 있다고 있었다는 거죠. 그래서 인천국제공항에서 우연히 지나가던 선교사님을 보고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고 합니다.
단순히 돈 얼마 보내고 끝이 아니라, 선교 현장에 있는 사람의 얼굴을 기억하면서 진정으로 중도 기도를 하고 있었던 안동교회 청년부의 모습에 큰 감동을 받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후 선교사님 가족은 안동교회에 감사의 인사를 전하기 위해 일정을 내어 안동을 방문하게 됩니다. 두번째로 만난 김승학 목사는 선교사님의 두 자녀에게 "OO이는 학교에 잘 적응하고 있니?", "△△이는 먹는 거 뭐 좋아하니?" 하면서 아이들의 이름을 불러주고 손을 얹어 기도도 해주었다고 합니다. 그것은 선교사님의 가정에 큰 감동을 주었는데, 그 이유는 만난 자리에서 이름을 물어본 것이 아니라 오래된 사이처럼 이미 이름을 기억하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나서 김승학 목사는 선교사님 가족을 데리고 안동교회 교인이 운영하는 신발가게에 가서 아이들에게 운동화를 사주셨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메뉴라며 돈가스집에 데려가 돈가스를 사주셨다고 합니다. 금액을 따지면 큰 대접은 아니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형식적인 대접이 아니라 마치 각별하고 소중한 친구를 대접하는 듯한 김승학 목사의 마음이 느껴져 선교사님 가족은 너무나 행복했던 시간이었다고 해요.
다시 사역지인 A국에 돌아온 후 선교사님은 김승학 목사로부터 카톡을 하나 받았습니다. 그 카톡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선교사님!
선교 열심히 하시는 거 잘 알고 있어요.
계속 수고 부탁드려요.
혹시 재정이 너무 어려워지면 연락주세요."
이 카톡을 받고 선교사님은 펑펑 울었다고 합니다. 후원교회를 방문하면 선교사를 동역자가 아니라 시혜의 대상으로 여기는 곳이 많다고 해요. 후원교회가 불러가 몇 시간 운전해서 갔더니 담임목사가 부재 중이라 서너 시간을 기다리다가 돌아온 경우도 있다고 하고요. 후원교회의 목사가 "내가 바빠서..." 하면서 돈 봉투만 쥐어주고 사라지는 경우도 있는데, 선교사를 돈 구걸하는 거지로 보는 건가 싶어 자괴감을 느끼는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 와중에 김승학 목사를 만났는데, 사람을 귀히 여기고 진실되게 대하는 목사님과 교회가 있다는 것에 감동을 받아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는 겁니다.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이 이야기 말고도 얼마나 많은 분들이 김승학 목사로부터 감동과 도전을 받았는지, 다 알 수는 없습니다. 때로 한국교회의 어두운 면으로 인해 절망하기도 하지만, 이런 분들이 있기에 이 땅을 향한 하나님의 인내와 사랑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참고문헌
- 안동교회, 위키백과
- 안동교회 홈페이지
- "안동교회, 3대가 함께 효 실천", 한국기독신문 2004년 7월 17일
- "경북 안동교회, 요즘에 이런 교회도 있다", Redian 2018년 8월 16일
- "한 장로님과 안동 최초의 감리교회", 안동교회 신앙칼럼 2018년 10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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